STORY OF BLACK DESERT
세계관
고대 문명을 멸망시켰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이 검은 돌은 칼페온과 발렌시아 왕국 사이에 있는 사막에 다량 존재하는데,
칼페온은 검은 돌이 묻힌 땅을 검은 사막이라 부르며 자원을 쟁탈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했고, 발렌시아 왕국은 이 전쟁으로 인해 사막에
많은 병사들의 피를 흘려 붉은 사막이라 부르고 있다. 자본과 상업의 나라 칼페온과 절대 왕정의 나라 발렌시아의
역사 속에서 당신은 고대 문명과 경험에 숨겨진 비밀에 근접하게 되고 잠재된 기억과 검은 돌의 비전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이제 고대의 진실을 찾아 모험을 떠날 당신을 검은사막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칼페온의 역사
검게 살덩이가 썩어가는 재앙은 용서도 예외도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하기 시작했고, 왕래를 끊었다. 혹여 질병에 걸렸다고 의심되는 이들은 모두 성밖으로 내쳐졌다. #1 엘리언력 235년 자식까지 버려야 했던 참혹한 질병 앞에 왕족, 사제라는 고귀한 핏줄, 신분은 도움이 못됐다. 천민 촌에 내쳐진 이들 역시 흉측한 몰골로 죽음을 맞이했고, 지녔던 모든 것들과 함께 불태워졌다. 바람처럼 아무일 없듯 검은 죽음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흔적은 하층민을 흔들었다. 왕족조차 나와 피가 다르지 않음을 무수히 보았고, 재앙을 멈춰달라는 그 많은 기도에 엘리언은 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각국의 귀족들은 다급했다. 칼페온에 모여든 이들은 발렌시아를 공적으로 삼아 이전의 질서를 유지하기로 했다. 엘리언 사제들이 먼저 나서 이교도인 발렌시아가 흑결정을 연금한 마법의 돌로 재앙을 초래했다고 선동했고, 왕들은 재앙을 막기 위해 흑결정이 나는 검은 사막을 차지해야 한다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노동의 가치를 막 깨닫기 시작한 하층민에게 이전에는 없던 급료를 약속했다. 연합이 구축되었고 발렌시아와의 긴 전쟁에 피를 뿌리기 시작했다.
재앙이 공평했음은 원정 길에 즐비한 발렌시아 인들의 검은 시체가 일찌감치 알려줬다. 사제들의 선동은 비웃음을 샀고, 엘리언교가 지탱해 온 신분은 운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쟁은 복수라는 명백한 이유를 쉽게 만들어줬다. 거듭된 원정 덕에 메디아가 부상했다. 대륙의 중간에 위치해 교역으로 생계를 잇던 메디아는 연합 측에 전쟁 물자를 대며 부를 쌓았다. 칼에서 시작한 무기는 총과 대포로 값을 더했고 대규모 철광이 개발되었다. 더 아는 것도 힘이었다.
발렌시아는 사막의 밤을 이기고, 조리를 위해 흑결정이 필요했다. 이에 연합은 검은 사막을 없애기라도 할 듯 매 원정마다 다량의 흑결정을 실어 날랐다. 메디아는 이를 반겼다. 그들은 철을 녹이기 위해, 화약을 만들기 위해 흑결정이 필요하다고 연합측에 말했다. 칼페온 연합은 원정 비용을 일부 충당할 수 있는 것에 크게 만족했다. 발렌시아도 칼페온도 흑결정의 가치를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헐값에 흑결정이 쌓이는 동안, 메디아에는 도시가 생겨나고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줄을 긋듯 성벽이 한 줄씩 둘러쳐졌다. 유명해진 건 발렌시아 왕 이무르 네세르였다. 재앙을 몰고 온 악마로 처음 소개되었던 그가, 후에는 연합을 조롱한 무용으로 광대들의 입을 탔다. 발렌시아 내부에서 수 차례 반역이 있었음에도 칼페온 연합은 끝내 발렌시아의 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합은 모래 폭풍이 칼페온의 왕 다하드 세릭과 병력의 대부분을 검은 사막에 묻어 버린 마지막 원정까지 30년을 전쟁에 몰두했다.
포건은 나가를 밀어내고 세렌디아의 늪지에 자리를 잡았다. 오크와 오우거의 대 이동도 있었다. 메디아 남부에는 다양한 야만이 모여 부락을 형성했다. 원정대의 몰락으로 방비가 소홀한 틈에 터전을 잃은 거의 모든 야만족들이 피해가 덜한 내륙으로 몰려들었다. 곧 약탈이 줄을 이었다.
소통도 없어 혼란이 더 커졌다. 오랜 전 구획된 삶의 영역은 의도하지 않게 허물어졌지만, 교류가 없던 긴 시간은 사람과 야만의 대화를 어렵게 했다. 설사 당장 말이 통했다고 해도 살려는 것보다 정당한 이유와 입장을 댈 수 있었을까? 사람과 야만이 다시 한 땅에 어우러졌고, 그사이 연합도 원정도 지난 일이 되었다.
케플란과 하이델, 올비아는 메디아의 중계로 발렌시아와의 교역에 나섰다. 원정으로 부족해진 재정을 메우려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칼페온 왕도 엘리언 사제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상단의 교역을 허락했다. 원정 이후 10년 만에 다시 찾은 메디아는 이전의 메디아가 아니었다. 남부는 야만족의 차지였지만, 북부는 겹겹이 성곽으로 둘러 쌓였고 그 위에서 총과 대포로 무장한 병사들이 자신만만하게 상단을 내려보고 있었다. 도시는 활기가 넘쳤으며 굴뚝과 처음 보는 장치들이 즐비했다. 칼페온 상단은 이유를 찾아 분주했지만, 메디아에서는 알 수 없었다.
단서는 검은 사막에서야 찾을 수 있었다. 그곳을 발렌시아 병사들이 굳게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땔감이라면 그렇게 지킬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훔치듯 숨겨온 흑결정은 칼페온의 연금술사들 손에 놓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디아의 무기가 더 강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법의 돌 운운한 사제들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는 케플란, 하이델, 올비아에도 알려졌다.
각국은 흑결정을 찾아 나섰다. 케플란이 먼저 바위산에서 흑결정을 발견했다 하자만 불순물이 많아 연소에 만족할 수준이었다. 메디아는 이것도 비싸게 사줬다. 철광을 녹이려면 더 높은 열을 내며 오래 타는 흑결정이 흑탄보다 요긴했고 전쟁 후 발렌시아는 흑결정의 거래를 금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세렌디아의 늪지에서 발견되었다. 어린 나가의 손에 들린 검은 조약돌이 흑결정이었다. 순도가 아주 높아 이를 확인하기 위해 메디아의 상인들이 직접 찾아왔을 정도였다. 칼페온은 초조했다. 왕국을 샅샅이 뒤져도 흑결정은 없었고, 이대로 두어서는 그간 서대륙의 맹주를 자처하던 칼페온이 이류 국가가 되는 것은 자명했다. 세렌디아의 흑결정도 탐났다. 문제는 하층민이었다. 재앙, 전쟁, 재해로 수가 줄고 야만족의 약탈로 지친 이들을 병사로 다시 세우려면 많은 급료를 필요했다.
칼페온의 젊은 왕 가이 세릭은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땅에 떨어진 엘리온교의 위상을 세울 기회라면서 사제들을 설득했다. 상단에게는 메디아 상단과 경쟁할 수 있도록 사병을 허용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시 흑결정을 두고 전쟁이 일었다. 이번에는 욕심이 이유였다.
크루시오왕은 일년이 지나서야 하이델에 돌아왔다. 올비아는 전쟁 없이 항복을 선언해 칼페온의 직할지가 되었다. 케플란의 채석장과 세렌디아에 세운 추출장에서 흑결정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가이 세릭의 욕망은 부왕이 묻혀 있을 검은 사막을 향했다. 검은 사막만 차지하면 알려진 모든 왕국과 미지의 세계까지 대륙 전체를 제패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더 이상 연합은 없다. 하이델의 강력한 조력 없이는 메디아도 넘을 수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하이델이 나서지 않을 것임을 잘 안다. 가이 세릭은 대규모 용병을 뽑기로 했다. 문제는 또 전비다. 이제 막 들어온 흑결정이 쌓이기를 기다릴 인내가 부족했다. 왕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말았다. 전비 마련을 위해 전례 없는 세금을 매겼다. 이제 막 안정을 찾은 하층민에게는 날벼락이다. 또 엘리언 교단에게도 세금을 물렸고 상단의 사병은 왕에게 귀속시켰다.
칼페온은 각 계급을 대표하는 의원이 선출되었고 의회정이 성립했다.
세렌디아의 역사
무리한 선동으로 신앙심에 이반이 생긴 상황에서 급작스러운 원정 중단은 교단의 권위를 위태롭게 할 것이었다. 또한 그간 원정대가 지나는 길에 엘리언의 예배당이 들어섰고, 잘하면 발렌시아까지 대륙 전체에 엘리언교를 전파할 기회였다. 사제들은 크루시오에게 파문을 경고하는 한편, 다하드를 종용했다. 크루시오는 고민에 빠졌다. 칼페온과의 전쟁은 어려운 선택이다. 하이델 군부에는 부왕을 따르던 엘리언 추종자들도 여전히 많았다.수 차례 밀사가 다녀간 끝에 크루시오는 다시 원정에 나서기로 했다. 왕위 계승 초반 안팎의 도전을 이겨낼 만큼 자신이 없었고 마지막이라는 단서를 다하드가 수용했기 때문이다. 대신 다하드는 후대에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발렌시아의 성은 봐야 하지 않겠냐며 대규모 원정을 제안했다. 원정대가 꾸려지는 데만 2년이 소요되었다.
검은사막에 이르기까지는 도몬가트조차 눈을 감고도 갈만한 익숙한 길이다. 뒤에 처져서 여행처럼 다녀오면 될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있을까? 원정 초반부터 일기 시작한 바람이 메디아에 이르자,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모래 소용돌이로 변했다. 사막은 아직 멀다. 연합은 낯선 성벽 아래 병영을 꾸리고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서야 메디아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상단을 통해 종종 소식을 들었지만, 메디아가 달라졌다. 병영이 꾸려졌던 성벽은 낮으나마 도시 전체를 둘렀고, 곳곳의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쉼 없이 올랐다. 다하드가 원정대를 재촉했다. 의문이 앞섰지만, 지체하면 보급에 문제가 생긴다. 긴 행렬이 검은사막에 이를 무렵 바람이 다시 일었다. 이번에는 빗방울이 섞였다. 사막에 빗방울이라니?
그때 누군가 붉은 깃발을 보았다고 외쳤다. 붉은 깃발은 발렌시아 진영이 섰음을 말하고 연합이 검은사막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종군하던 엘리언 사제들이 모두 하늘을 향해 기도를 시작했다. 그사이, 오랜 적과의 일전을 위한 막사와 진영이 바람을 무릅쓰고 꾸려졌다. 그러나 얼마 안가 낮이 밤처럼 어두워졌고, 폭풍우가 몰아쳤다. 모래 구덩이에서 크루시오가 눈을 떴을 때쯤 다하드는 없었다. 붉은 깃발이 바로 옆에 나뒹구는 것을 보아 발렌시아의 피해는 더 컸을 것이다.
원정?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다시 검은 구름이 사방에 깔렸다. 귀환 길은 험했다.계속된 모래 폭풍과 지반 침하가 살아남은 원정대를 괴롭혔고, 데미강 하류에 이르러서는 바다처럼 넓어진 강물이 길을 막았다. 한 달을 꼬박 기다리고 난 뒤 데미강 하류에 생겨난 거대한 삼각주를 건너면서야 크루시오는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원정을 후회했다. 마지막 원정은 그렇게 끝났다. 칼페온의 교단은 병사들을 크게 포상했다. 그리고 발렌시아가 못 일어설 만큼 큰 승전을 거뒀다고 떠들어 댔다. 이유야 어떻든 재해로 시름이 컸던 상황에서 필요한 위안이기도 했다. 하이델 성까지 이르는 세렌디아 평원은 다행히 재해의 영향이 크지 않은 듯 했다. 다만 남쪽 지반이 꺼지며 습지가 늘었다.
사람이 끝내지 못한 전쟁을 자연이 끝냈고, 치유의 시간 동안 평화가 찾았다. 왕을 잃은 칼페온에서는 갓 스물을 넘긴 가이 세릭이 왕위를 이었다.
어린 나가들 손에 들린 돌조각이 흑결정이라는 조사관의 보고를 접한 도몬가트는 즉시 습지로 달려갔다. 칼페온의 힘에 밀려 불행한 원정에 나섰던 것을 갚아줄 확실한 열쇠를 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몬가트의 불행은 시작도 안 했다.
그 즈음 백방으로 흑결정을 찾아 나선 것은 칼페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칼페온 땅에 흑결정은 없었다. 케플란의 채석장에 이어 세렌디아에서 흑결정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젊은 왕 가이 세릭은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전쟁 없이 케플란을 꿇린 후 하이델의 감시탑 부근 평원으로 진격했다. 하지만 하이델은 만만찮은 전력이다. 가이 세릭은 병력을 대치시킨 후 야음을 틈타 정예와 함께 하이델 성을 향했다. 도몬가트는 칼페온의 기습에 허무하게 성을 잃었다. 더 치욕적인 것은 포로가 된 것이다. 하지만 도몬가트는 항복은 거부했다. 생사 확인 차 칼페온에 온 하이델 측 전령에게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개의치 말고 결전을 명했다. 이에 클리프의 군대가 케플란을 두고 공방을 거듭했고, 암스트롱이 데미 강 계곡을 거슬러 칼페온 평원에 진을 쳤다. 가이 세릭은 케플란의 필승 카드인 중갑 보병을 세웠다. 그사이 이미 많은 피가 흘렀지만, 이대로라면 더 큰 피를 흘릴 전면전이다. 칼페온이 승리해도 두 용장의 분투에 검은 죽음만큼의 재앙을 맞을 것이었다.
가이 세릭이 생각을 바꿨다. 필요한 것은 흑결정이었기에 항복 문서 대신 조약서를 내밀었다. 예고된 엄청난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상황에 도몬가트가 망설였다. 항복이 아니라면 언제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칼페온 파견관들은 조약이 이행되는 상황을 1년 넘게 확인했고 그 후 도몬가트가 하이델에 돌아왔다. 하이델 사람들은 도몬가트를 이해했다. 감시탑 부근 평원을 중립지로 하고 캠프를 서부로 옮겨야 했던 클리프와 암스트롱도 왕의 결정을 존중했다. 비겁자라 수근 댄 이들도 많았지만, 도몬가트는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 칼페온의 추출장이 세렌디아의 습지에 들어서는 것을 보는 것이 마음을 더 불편하게 했다. 크루시오가 병을 앓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가이 세릭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서대륙이 술렁거렸다. 갓 서른의 젊고 강인했던 그다. 괴질에 급사한 것이라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독살이라는 소문이 입을 탔다.그렇다면 더 좋은 일이다. 기회가 예상보다 빨리 왔다고 크루시오는 생각했다. 곧 벌어질 권력 암투에 칼페온이 무력해질 것이었다. 크루시오는 서부 캠프의 클리프를 불러들여 조약 폐기를 상의했다. 클리프는 이른 대응은 자칫 칼페온이 결집할 빌미가 될 수 있다며 기다려 보자고 했다.둘 간의 대화에 수석 시종 조르다인이 끼었다. 전쟁 이후 몸이 불편한 크루시오를 위해 클리프가 추천한 자다. 분별력이 뛰어나고 일을 잘 처리해, 내정에 도움이 컸다. 조르다인은 가이 세릭의 죽음은 왕실 내의 권력 다툼이 아닌, 교단과 동조하는 상인 세력이 벌인 일로, 하이델이 어떻게 나오든 현재의 칼페온은 결집할 구심점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크루시오도 조르다인에 동조했지만, 우선은 클리프의 말을 따라 상황을 지켜보았다. 칼페온의 혼란은 의외의 방향으로 급격히 진행되었고, 마무리도 빨랐으며, 의회정이 성립한 칼페온은 이전보다 더 강력해졌다. 조르다인은 스물다섯에 시종장이 되었다. 닥치는 대로 살육하며 마을과 성을 헤집던 칼페온 병사에 가족을 다 잃었고, 복수를 위해 군에 입대했던 그가 내정을 책임지는 시종장이 된 것이다. 사실 조르다인 직책은 재상이라 해야 옳다. 하지만 추출장이 들어서자 왕의 책무를 못 했다며 크루시오가 스스로를 격하시켜 성주로 부르게 한 후, 직책에 변화가 있었다. 장군 클리프가 대장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르다인은 크루시오에게 길어야 5년 이내 칼페온은 힘을 잃을 것이라 말했다. 상인 세력이 칼페온을 좌우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이며, 이를 제지할 칼페온 교단은 교세 확장에 몰두해 재정을 피폐하게 할 것이라 말했다. 하이델은 그사이 강해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 세금을 더 거둬 군비를 확충하자고 크루시오를 설득했다. 크루시오도 방치된 하이델성 재건에 마음이 쓰였던 터다.
고대인들이 의지의 탑을 쌓은 직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메디아의 역사
칼페온의 종용이 시작되자, 바리즈 2세는 앞서 전쟁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칼페온에는 발렌시아로 향하는 길을 터주고, 발렌시아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소극적인 왕을 대신해 흐름을 간파한 것은 연금술사이자 메디아 상인 연합을 꾸리고 있던 인물, 네루다 셴이었다. 네루다 셴은 기술 좋은 대장장이들을 모아 칼페온과 거래를 텄다. 메디아 상인회가 칼페온 연합에 물자를 지원하는 대신, 칼페온은 물자 생산에 필요한 흑결정을 주기로 한 것이다. 칼페온이 흑결정의 가치를 몰랐기에 거래는 흔쾌히 성립됐다. 더구나 셴 상인회는 메디아 용암 동굴의 지형을 이용해 자연의 용광로로 사용하고 있었다. 동굴 안 평탄하고 작은 화구를 이용하여 철과 흑결정을 녹이고, 칼페온보다 빠른 속도로 무기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물자를 칼페온에 실어 나르면, 꼭 그만큼의 흑결정이 돌아왔다. 칼페온은 원정에 급급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가는 모래알들은 보지 못했다. 그 즘 발렌시아 외교 사절단이 은밀히 메디아를 다녀간 것은 소수의 메디아 상인회만 아는 일이었다. 메디아 상인회는 칼페온에게서 받은 대가의 일부를 발렌시아에 지급했고, 발렌시아는 메디아 상인회에 교역권과 보호를 약속했다. 칼페온이 가공 기술을 쌓자 속은 기분이 든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제 와 흑결정을 되돌려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칼페온은 자신들이 바치다시피 한 흑결정을 다시 사들이고자 했지만, 거래는 결렬됐다. 자유 종교였던 알티노바가 발렌시아의 신을 계승해 아알을 섬기기 시작한 것은 사실상 발렌시아와의 외교를 표명하는 바였다.
그렇게 메디아 외곽에서 행해지던 은밀한 움직임이... 다시금 메디아를 이전의 무법지대로 되돌려 놓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끔찍한 재앙의 발단은 타리프 마을에서 시작됐다. 메디아 서부의 주나이드 강을 끼고 있는 작은 마을, 타리프는 소서러들이 모인 곳으로 대대로 외부의 일에 관심 없는 독자적인 곳이었다. 약 삼백 년 전, 동쪽의 땅에서 이동한 소서러 카르티안이 무리를 이끌고 메디아에 정착했고, 타리프 - 희생을 통한 새로운 시작을 기록했다. 타리프의 규율은 마을을 세운 카르티안이 죽기 전, 남긴 카르티안 서를 토대로 이어졌다. 이 마법서에는 타리프 소서러가 지켜야 할 규범과 카르티안의 힘이 함축되어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카르티안 서는 감당하지 못할 힘이 되고 말았다. 터전을 옮긴 소서러는 조금씩 힘을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르티안 서를 습득한 자들은 결국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육체적 또는 정신적 손상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따라서 카르티안 서는 새로이 작성되었고, 진짜는 봉인되었다. 그리고 가장 강한 다음 지도자에 의해 결계가 하나씩 더해져 갔다. 파기되지도, 불타지도 않는 카르티안 서에 담긴 소서러의 파멸을 꺼내 볼 수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메디아 성이 일레즈라의 손에 불타올랐다. 메디아는 사흘 동안 칠흑 같은 밤을 이어갔다. 태양도, 달도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어둠 속, 횃불에 의지한 채 모두가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알티노바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공격적으로 변했고, 어떤 이는 괴성을 지르며 알티노바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들의 눈에 비친 빛은 환하게 불타오르는 메디아 성뿐이었다. 보잘것없던 왕정이 무너졌음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바리즈 2세가 서거했음에 슬퍼하는 자는 있었지만, 메디아의 막내 왕자가 재앙에서 살아남은 것을 기뻐하는 이는 없었다. 일레즈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녀의 정체는 다양한 이야기로 퍼져 소문만 무성한 채 사그라졌다. #7 엘리언력 280년 일레즈라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일레즈라의 이름을 앞세워 알티노바로 스며든 것은 폐철광산 인근에서 넘어온 야만족이다.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는 검은 망토를 두른 야만족 무리가 알티노바를 차지하겠다며 줄을 그었다. 야만족의 발길에 메디아 북서, 숲속에 거주하던 포악한 세제크 사냥꾼 집단까지 알티노바로 몰려들었다.
발렌시아의 역사
깨어있는 자가 나타나 한 청년을 고대 석실로 이끌어, 닫혀있던 문이 열리자 모두가 무릎 꿇고 석실로 향하는 계단을 놓아, 금은보화가 가득한 그 방에 다다랐을 때, 청년은 가장 먼저 금빛의 왕관을 집어 드니, 발렌시아의 첫 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재앙을 몰고 온 발렌시아의 4대 국왕, 이무르 네세르의 통치가 끝난 지 50년. 발렌시아 사람들은 당시 모든 기억을 잊고 살고 있다. 대사막을 덮친 검은 죽음도, 발렌시아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사건으로 남은 아크만 대학살도… #1 엘리언력 233년 아크만 부족과 네세르 왕족 간의 갈등은 예견된 일 중 하나였다. 발렌시아 건국 이전부터 존재해 온 아크만 부족은 스스로를 <고대 문명의 수호자>라 칭하며 그 어디에도 소속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발렌시아 사막에 놓인 석실, 고대 유물 등을 놓고 왕족과 마찰을 일으켜왔고, 4대 국왕 이무르 네세르는 아크만 부족을 규합하는 것이 유일한 과제라 여겼다.
이무르 왕의 인내심이 좋지 못하다는 정평은 사실이었다. 아크만 부족에게 몇 차례 보내진 회유가 모두 거절되자 왕은 화를 이기지 못했다. 결국, 왕의 군대가 아크만의 영역으로 보내졌을 때 그것은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다. 널브러진 부족의 시체 위에서도 아크만은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크만이 모습을 감추자 곧 참담한 재앙이 서대륙을 뒤덮기 시작했다. 발렌시아 상단으로부터 시작된 검은 죽음, 살덩이가 검게 썩어들어가는 참혹한 광경 앞에 이무르 왕도 사랑하는 왕비를 잃어야 했다. 사람들은 아크만 종족을 학살한 이무르 왕이 신의 분노를 산 것이라 수군거렸다. 이국에서는 그를 악마로 지목했다. 발렌시아가 검은 돌을 이용해 재앙을 초래한 것이라 몰아세운 것이다. 칼페온의 엘리언교 사제들은 재앙을 막기 위해 검은 돌이 묻힌 사막을 차지해야 한다고 선동했다.
자신만만하던 칼페온의 원정대가 간신히 넘은 사막 위엔 예측이라도 한 듯 무장한 발렌시아군이 서 있었다. 오직 국왕을 위해 존재하는 발렌시아군의 아성은 이제 막 집결된 연합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칼페온의 왕 가이 세릭의 고집으로 전쟁은 삼십 년간 이어졌지만, 그 끝은 실로 허무했다고 말한다. 사막 위에 뒤엉킨 칼페온 연합군과 발렌시아군을 집어삼킨 거대한 모래 폭풍, 발렌시아에서도 전례가 없던 일이다. 칼페온은 수만의 원정대를 잃었고, 더는 사막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그렇듯 전쟁은 자연의 섭리로 끝이 났다. 이내 모래 위에 뿌려졌던 핏자국도, 전쟁의 잔인함도 모두 사막이 거두어 간 듯 잠잠해졌다. 이무르 왕은 희생된 군사를 기리기 위해 전쟁이 일었던 곳을 붉은 사막이라 칭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알신에게 감사 드렸다. 그리고 왕이 남긴 말은 곧 발렌시아의 지침이 되었다. “사막은 아알의 영역이오, 오아시스는 아알의 청량함이오, 검은 돌은 아알의 풍족함이라.” 검은 죽음과 기나긴 전쟁, 그리고 소홀해진 내정 탓에 잇따른 작은 반란도 흔한 일이 되었다. 지친 왕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 때쯤, 발렌시아 왕국의 상징, 황금 열쇠를 물려받으며 왕위를 이은 것은 5대 토르메 네세르다. 발렌시아 역사상 가장 많은 나이에 왕위를 이어받은 토르메는 이미 세 아들과 하나의 딸을 두고 있었다.
지병을 앓던 토르메가 서거한 뒤, 그의 첫째 아들인 사하자드 네세르가 6대 왕위에 올라섰다. 토르메의 유언에 따라 그와 이국의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왕자 바르한은 군부를, 셋째 왕자 만메한이 법전을, 그리고 막내 공주 사야가 아알의 경전을 관리하도록 했다. 발렌시아 국민은 안심했고 그런 왕국이 자랑스러웠다. #6 엘리언력 282년 하지만 평화는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둘째 왕자 바르한이 그의 어머니를 통해 사하자드 왕에게 황금 열쇠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천 년의 역사 동안 전해져 온 황금 열쇠는 발렌시아 1대 국왕이 탄생한 장소로 향하는 매개체였다. 대대로 발렌시아 국왕만이 지닐 수 있는, 왕이 지니고 있어야만 하는, 즉 그것이 없다면 왕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는 물건. 멸족했다고 여기던 아크만 무리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사막을 떠도는 고대 거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진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여겼다. 발렌시아 건국 전설에 얽힌 비밀을 품은 황금 열쇠, 그것은 되려 발렌시아 왕국의 균열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카마실비아의 역사
가장 어린 나이에 여왕의 직위에 오른 브롤리나 오네트는 카마실비아를 휘어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브롤리나는 타고난 가넬의 기운을 가졌고, 자연 교감에서 매우 정교한 실력을 보여 왔다. 더불어 뛰어난 지혜와 기민함을 갖추었으니 여왕이 된 일은 당연했다. 그러나 전쟁은 다른 이야기였다. 카마실비아를 위협하는 베디르 세력 중 하나인 아히브의 선동은 거칠었고, 당장이라도 타오를듯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처음부터 가넬과 베디르가 갈라선 것은 아니었다. 태초의 시대, 태양의 기운을 받은 가넬과 달의 기운을 받은 베디르는 실비아 여신에게서 나온 쌍둥이로 서로의 오랜 자매이자 친구였다. 그러나 엘리언력 235년, 카마실비아를 덮친 재앙이 그들을 우정을 시험했다. 풍요만을 누리던 나약한 자손들에게 닥친 첫 시련이었다. 산이고 숲이며 초원에 어둠 정령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쌓이는 것은 희생뿐이었다. 실비아의 자손들은 오직 여신이 남긴 신단수, 카마실브의 힘에만 의존해 버티고 있었다. 계속되는 대자연의 비명에 자손들은 재앙을 멈춰달라 기도했지만, 여신은 답하지 않았다.
게다가 미래를 보는 숲의 툴리아로부터 머지않아 수도가 잿더미에 잠식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을 때, 베디르는 결단했다. 베디르는 줄곧 어둠의 정령을 넘어설 힘을 찾아왔다. 수많은 시도를 해왔지만, 역시 카마실브의 기운을 넘어서는 힘은 카마실비아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베디르의 생각이 도달한 지점은 카마실브를 태워 발현되는 힘을 기대하는 것이었다. 기대는 곧 현실이 되었다. 카마실브의 기운이 타들어 가며 나타난 생명의 힘은 실로 파괴적이며 대단했다. 그러나 카마실브는 온전하지 못했다. 모든 숲을 이룬 양분이자 생명을 만든 대자연의 어머니인 카마실브가 소멸했을 때, 자손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슬픈 정적을 깬 것은숲의 노래였다. 카마실브가 다시 깨어나리라는 위로가 담긴 이 노래는 아주 오랫동안이나 모든 숲에 울려 퍼졌다.
어둠 정령은 사라졌지만, 더는 여신의 기운을 빌릴 수 없다는 불안감은 크게 다가왔다. 또다시 위기가 닥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아니 더 큰 재앙일지도 모른다. 위기를 느낀 카마실비아의 자손들은 카마실브 가지에 정령의 힘을 더해 더 좋은 무기를 만들어내고, 다루는 법을 익혀갔다. 활과 검을 같이 사용하는 레인저 상비군과 그들의 성역 그 자체에 집중한 아케르 근위대가 형성되었다. 아케르는 수도를 장악하고 카마실비아의 국경과 모든 관문을 닫고 더는 카마실비아에 외부인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했다. 그 후로부터 베디르는 차츰 가넬들과 멀어져 갔다. 힘을 다루는 방법도, 사상도 달라졌다. 복병은 아케르 근위대에 대적하며 나타난 아히브였다. 아히브는 오직 베디르 종족으로 이루어진 초자연적인 힘을 갈구하는 세력이었다. 카마실브를 태워 얻었던 거대한 힘을 잊지 못한 걸까? 카마실브의 소멸이 아히브를 창시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룬 숲과 정령의 역사에 냉담했고, 다소 독선적이며 오만했다. 이런 아히브들을 카마실비아에서는 이단이라 칭하고 베디르 자체를 부정하려 했다. 극단적인 아히브와 보수적인 아케르의 시선에 일부 베디르 종족은 중립을 선언한다. 순수한 힘은 아니었지만, 레인저와 마찬가지로 고대인의 역사인 카마실브 의식을 계승하고 카마실비아 수호를 계약한 다크나이트였다. 아케르, 레인저, 다크나이트, 아히브까지 나뉜 만큼, 이들 사이에 구심점은 없어 보였다.
흉포하고도 말이 통하지 않는 살룬곰이다. 위협적인 거대한 그림자,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짙푸른 눈동자, 아히브가 살룬곰을 끌어들인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날카로운 가시 넝쿨이 솟아난 메마른 땅의 경계에서 아케르는 돌아서야 했다. 카마실비아의 숲으로 돌아온 아케르는 그간의 다툼으로 일그러진 대자연에 집중했다. 카마실브의 생명을 깨울 방법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카마실비아에 남은 베디르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가넬의 기운이 섞여 있거나 스스로 베디르임을 부정해 힘을 봉인한 자들이었다. 아케르도 그런 자들까지 내치진 않았다.
카마실비아에 일어난 보람찬 변화 중 하나는 대자연의 회복이었다. 잠든 카마실브를 깨우기 위해 사제들을 키워냈고, 특별한 수련을 거쳐 성인이 된 카마실브 사제들은 바깥세상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각지에 있는 정령을 찾아 힘을 빌리고 담아냈다. 조금씩이지만 카마실브의 기운은 치유되어 갔다. #4 엘리언력 284년 아히브가 메마른 땅으로 달아난 지 8년… 어둠이 서린 오딜리타에 아히브의 요새가 지어졌고, 그들이 살룬곰과 결탁해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냈다는 소문도 들렸다. 메말랐던 가시넝쿨은 살기를 품었고, 척박했던 대지는 아히브의 불빛으로 일렁였다. 카마실비아 초원 동부에 주둔하는 레모리아 감시대가 아히브를 움직임을 주시하며 경계를 강화하고 있었다. 어느 날, 두자크 터널을 감시하던 레모리아 대원들이 메마른 땅에서 넘어 온 아히브와 마찰을 빚었다. 레모리아 지원군이 가세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계속된 싸움에 초원을 지키던 레모리아 군의 절반을 잃었고, 카마실브 사제들이 두자크 터널을 봉쇄하고서야 아히브가 물러섰다. 그들은 예전의 아히브가 아니었다. 그무슨 짓을 하면 이렇게 강해질 수 있던가? 그것은 마치 어둠 정령을 다시 만난 것처럼 두려웠다. 아히브의 마수가 뻗칠수록 아케르는 초조했다. 카마실브의 복원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다. 하지만 이런 아히브의 기세라면 평화를 기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드리간의 역사
용을 죽인 저주는‘셰레칸’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용의 목을 적시기 위해 평생 떠돌 것이다. #1 엘리언력 185년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용의 피를 뒤집어쓴 부족, 피부는 점점 용처럼 단단해지고 몸집은 거대해져, 그들은 스스로를 ‘셰레칸’ 이라 칭했다. 최초의 정착지는 드리간의 동쪽, 일대의 소수 부족을 하나로 모아 셰레칸 출신의 아쿰이 초대 통치자로 올라섰다. 하지만 셰레칸의 영광은 한 해가 채 가기도 전에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그들이 정착한 땅에는 반드시 지독한 가뭄이 들었으며, 말라버린 땅 위에서 모두가 물 한 방울을 아쉬워하며 죽어갔다.
셰레칸의 전사들이 차례대로 죽음을 맞이해갈 때, 한 기록자는 재앙에 대해 용의 피를 뒤집어쓴 대가라며, 셰레칸의 역사는 고작 한 구절에서 마칠 것으로 예상했다. 용을 직접 죽인 셰레칸 최후의 생존자, 아쿰은 숨을 거두기 직전, 후대에 용의 이빨을 건네며 ‘이것을 땅에 묻어 축복의 비가 내리는 곳에 정착하라’ 일렀다. 용의 저주에 의해 죽어간 선조의 뜻에 따라 후대는 긴 방랑 생활을 시작했다.
마침내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사십 년 만의 쏟아진 비는 말라붙은 드리간의 협곡에 마르지 않는 폭포와 호수를 만들며 용의 이빨이 잠든 땅, 드벤크룬의 탄생을 알렸다. 오랜 방랑 생활에 지친 셰레칸의 후예들은 비로소 안도할 땅을 찾았지만, 그들의 몸집은 이전과 달리 작고 쇠약해져 있었다. 그들에게 내린 재앙은 가뭄만이 아니었다. 자이언트보다도 거대한 몸집과 힘을 가졌던 셰레칸들이었지만, 후대에는 몸집이 점점 작아져 힘을 잃어갔다. 그러나 비로소 정착할 수 있다는 기쁨에 비교하자면 몸집이 작아진 것쯤은 문제조차 되지 않았다.
무심한 밤, 드리간 국경 인근의 작은 초소가 불타올랐다. 정적을 깬 것은 카마실비아에서 넘어 온 아히브 종족이었다. 카마실비아의 내부 분열에 놓인 아히브가 살룬 곰의 영토로 넘어가고자 드리간의 국경을 거친 것이다. 아히브와 드리간 자경단의 충돌은 이내 아히브를 추격해 온 카마실비아군에 의해 일단락되었지만, 몇 안 되는 자경단에 의지하고 있던 드리간은 작은 위협에도 큰 무력함을 느껴야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경단을 이끌던 인물, 두르게프는 셰레칸의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군대가 필요하다며 드벤크룬에 군조직을 청했지만, 원로회에서는 자경단을 드벤크룬의 정식 경비대로 승격시키자는 의견을 냈을 뿐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5 엘리언력 286년 사냥꾼 하나가 밤 사냥을 나섰다가 기이한 광경을 목격한다. 언덕 위에 펼쳐진 용의 날개… 그것은 분명히 용이었다. “용이 나타났다!” 사냥꾼의 외침이 밤까마귀 언덕부터 드벤크룬까지 울려 퍼졌다. 봉화가 오르고 촌장이 된 두르게프는 떨리는 두 손을 부여잡았다. 용을 쓰러트린 후예로 알려진 셰레칸이지만, 실제로 용을 보는 건 처음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작은 군대로는 용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두려움이 앞섰다. 수차례의 회의 끝에 촌장 두르게프는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뛰어난 용병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관철시켰다. 사냥꾼, 용병, 은퇴 병사 가리지 않았다. ‘싸울 수 있는 자들이라면 누구든지 환영합니다’ 라는 문구가 적힌 공고를 각국에 보내며 다시금 시작할 드리간 역사를 알렸다.
끝없는 겨울의 산의 역사
하지만 영원할 수 없었던 그녀들은 사라지기 전에, 자신들을 대신할 겨울의 용사를 찾고 있었으니, 여섯 마녀의 시련을 이겨내고 얼음 봉우리에 홀로 설 용사여, 위대한 라브레스카 님의 보물, 신도 태워죽이는 심연의 불꽃, 이닉스를 품고 어둠에 대적할지니, 끝없는 겨울의 산, 태고가 잠든 안식처로 오라… #1 기원전 4000년
용을 사냥하던 용, 라브레스카는 동족의 심장으로 황금산의 주인이 되었다. 이제 더 도전할 용이 나오지 않는 오랜 시간 동안 신의 실수인지 시험인지 모를 불꽃을 품기 전까지. 우연히 신도 태워죽일 수 있는 불꽃, 이닉스를 품게 된 라브레스카는 신의 권위에 도전했다. 그러나 신은 그녀의 양 날개를 꺾고 네 발을 잘라 끝없는 겨울을 내리니, 황금산의 영광은 너머로 사라졌다. 라브레스카는 볼품없는 모습으로 '첫 번째 죽음'을 맞이했다. 오직 심장 깊숙이 불꽃만을 품고, 태고가 잠든 안식처에... 그러나 라브레스카의 첫 번째 죽음에서 새 일곱 생명이 눈을 뜨니, 산 아래 미물들은 설원의 일곱 마녀라 칭하였다.
"반드시 돌아오겠노라. 이 불꽃은 그대의 생명이기에." 은빛버들은 라브레스카에게 굳건한 맹세를 하고 떠났다. 그가 떠나고 끝없는 겨울의 산에 죽음을 부르는 겨울이 시작되었다. 이닉스가 사라지자, 라브레스카의 몸을 흑정령이 잠식하기 시작했다. 라브레스카가 사무친 슬픔으로 흘린 눈물에서 '옥진시니'가 태어났다. 오랜 시간이 흘러 마침내 라브레스카가 두 번째 죽음을 마주했을 때, 온몸 가득한 상처에서 새 생명, '아벳스'가 태어났다. 산 아래서는 곡소리가 들려왔다. 라브레스카의 죽음으로, 여섯 마녀도 죽자 그 자리에서 남은 정수를 흡수한 인간들이 돌연변이가 되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검은 호수 부족장은 스스로를 위대한 개척자라 칭하고 나머지 다섯 부족을 규합했다. 사슴 아벳스 '에일'은 위대한 개척자의 부름에 화답하러 가는 부족들을 대신해 마을을 지키기로 약속했다. 그날은 아벳스가 즈비에르 구릉지를 벗어난 최초의 날이기도 했다. 여섯 번째 마녀 케헬에게 여왕 베르세데스와 병정 무라스카로 이루어진 므로웨크 군단을 다스리는 지혜를 물려받은 위대한 개척자는 매우 패기로웠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여섯 마녀의 지혜를 한자리에 모아도 용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터전을 버리고 떠난 다섯 부족은 분노했고, 위대한 개척자는 다섯 부족에게 돌팔매를 맞아 죽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그의 아들 아쿰이 훗날 다시 부족을 규합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