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OF BLACK DESERT
세계관
고대 문명을 멸망시켰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이 검은 돌은 칼페온과 발렌시아 왕국 사이에 있는 사막에 다량 존재하는데,
칼페온은 검은 돌이 묻힌 땅을 검은 사막이라 부르며 자원을 쟁탈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했고, 발렌시아 왕국은 이 전쟁으로 인해 사막에
많은 병사들의 피를 흘려 붉은 사막이라 부르고 있다. 자본과 상업의 나라 칼페온과 절대 왕정의 나라 발렌시아의
역사 속에서 당신은 고대 문명과 경험에 숨겨진 비밀에 근접하게 되고 잠재된 기억과 검은 돌의 비전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이제 고대의 진실을 찾아 모험을 떠날 당신을 검은사막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칼페온의 역사
검게 살덩이가 썩어가는 재앙은 용서도 예외도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하기 시작했고, 왕래를 끊었다. 혹여 질병에 걸렸다고 의심되는 이들은 모두 성밖으로 내쳐졌다. #1 엘리언력 235년 자식까지 버려야 했던 참혹한 질병 앞에 왕족, 사제라는 고귀한 핏줄, 신분은 도움이 못됐다. 천민 촌에 내쳐진 이들 역시 흉측한 몰골로 죽음을 맞이했고, 지녔던 모든 것들과 함께 불태워졌다. 바람처럼 아무일 없듯 검은 죽음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흔적은 하층민을 흔들었다. 왕족조차 나와 피가 다르지 않음을 무수히 보았고, 재앙을 멈춰달라는 그 많은 기도에 엘리언은 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각국의 귀족들은 다급했다. 칼페온에 모여든 이들은 발렌시아를 공적으로 삼아 이전의 질서를 유지하기로 했다. 엘리언 사제들이 먼저 나서 이교도인 발렌시아가 흑결정을 연금한 마법의 돌로 재앙을 초래했다고 선동했고, 왕들은 재앙을 막기 위해 흑결정이 나는 검은 사막을 차지해야 한다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노동의 가치를 막 깨닫기 시작한 하층민에게 이전에는 없던 급료를 약속했다. 연합이 구축되었고 발렌시아와의 긴 전쟁에 피를 뿌리기 시작했다.
발렌시아는 사막의 밤을 이기고, 조리를 위해 흑결정이 필요했다. 이에 연합은 검은 사막을 없애기라도 할 듯 매 원정마다 다량의 흑결정을 실어 날랐다. 메디아는 이를 반겼다. 그들은 철을 녹이기 위해, 화약을 만들기 위해 흑결정이 필요하다고 연합측에 말했다. 칼페온 연합은 원정 비용을 일부 충당할 수 있는 것에 크게 만족했다. 발렌시아도 칼페온도 흑결정의 가치를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헐값에 흑결정이 쌓이는 동안, 메디아에는 도시가 생겨나고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줄을 긋듯 성벽이 한 줄씩 둘러쳐졌다. 유명해진 건 발렌시아 왕 이무르 네세르였다. 재앙을 몰고 온 악마로 처음 소개되었던 그가, 후에는 연합을 조롱한 무용으로 광대들의 입을 탔다. 발렌시아 내부에서 수 차례 반역이 있었음에도 칼페온 연합은 끝내 발렌시아의 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합은 모래 폭풍이 칼페온의 왕 다하드 세릭과 병력의 대부분을 검은 사막에 묻어 버린 마지막 원정까지 30년을 전쟁에 몰두했다.
포건은 나가를 밀어내고 세렌디아의 늪지에 자리를 잡았다. 오크와 오우거의 대 이동도 있었다. 메디아 남부에는 다양한 야만이 모여 부락을 형성했다. 원정대의 몰락으로 방비가 소홀한 틈에 터전을 잃은 거의 모든 야만족들이 피해가 덜한 내륙으로 몰려들었다. 곧 약탈이 줄을 이었다.
소통도 없어 혼란이 더 커졌다. 오랜 전 구획된 삶의 영역은 의도하지 않게 허물어졌지만, 교류가 없던 긴 시간은 사람과 야만의 대화를 어렵게 했다. 설사 당장 말이 통했다고 해도 살려는 것보다 정당한 이유와 입장을 댈 수 있었을까? 사람과 야만이 다시 한 땅에 어우러졌고, 그사이 연합도 원정도 지난 일이 되었다.
단서는 검은 사막에서야 찾을 수 있었다. 그곳을 발렌시아 병사들이 굳게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땔감이라면 그렇게 지킬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훔치듯 숨겨온 흑결정은 칼페온의 연금술사들 손에 놓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디아의 무기가 더 강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법의 돌 운운한 사제들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는 케플란, 하이델, 올비아에도 알려졌다.
각국은 흑결정을 찾아 나섰다. 케플란이 먼저 바위산에서 흑결정을 발견했다 하자만 불순물이 많아 연소에 만족할 수준이었다. 메디아는 이것도 비싸게 사줬다. 철광을 녹이려면 더 높은 열을 내며 오래 타는 흑결정이 흑탄보다 요긴했고 전쟁 후 발렌시아는 흑결정의 거래를 금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세렌디아의 늪지에서 발견되었다. 어린 나가의 손에 들린 검은 조약돌이 흑결정이었다. 순도가 아주 높아 이를 확인하기 위해 메디아의 상인들이 직접 찾아왔을 정도였다. 칼페온은 초조했다. 왕국을 샅샅이 뒤져도 흑결정은 없었고, 이대로 두어서는 그간 서대륙의 맹주를 자처하던 칼페온이 이류 국가가 되는 것은 자명했다. 세렌디아의 흑결정도 탐났다. 문제는 하층민이었다. 재앙, 전쟁, 재해로 수가 줄고 야만족의 약탈로 지친 이들을 병사로 다시 세우려면 많은 급료를 필요했다.
칼페온의 젊은 왕 가이 세릭은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땅에 떨어진 엘리온교의 위상을 세울 기회라면서 사제들을 설득했다. 상단에게는 메디아 상단과 경쟁할 수 있도록 사병을 허용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시 흑결정을 두고 전쟁이 일었다. 이번에는 욕심이 이유였다.
그러나 더 이상 연합은 없다. 하이델의 강력한 조력 없이는 메디아도 넘을 수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하이델이 나서지 않을 것임을 잘 안다. 가이 세릭은 대규모 용병을 뽑기로 했다. 문제는 또 전비다. 이제 막 들어온 흑결정이 쌓이기를 기다릴 인내가 부족했다. 왕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말았다. 전비 마련을 위해 전례 없는 세금을 매겼다. 이제 막 안정을 찾은 하층민에게는 날벼락이다. 또 엘리언 교단에게도 세금을 물렸고 상단의 사병은 왕에게 귀속시켰다.
칼페온은 각 계급을 대표하는 의원이 선출되었고 의회정이 성립했다.
세렌디아의 역사
무리한 선동으로 신앙심에 이반이 생긴 상황에서 급작스러운 원정 중단은 교단의 권위를 위태롭게 할 것이었다. 또한 그간 원정대가 지나는 길에 엘리언의 예배당이 들어섰고, 잘하면 발렌시아까지 대륙 전체에 엘리언교를 전파할 기회였다. 사제들은 크루시오에게 파문을 경고하는 한편, 다하드를 종용했다. 크루시오는 고민에 빠졌다. 칼페온과의 전쟁은 어려운 선택이다. 하이델 군부에는 부왕을 따르던 엘리언 추종자들도 여전히 많았다.수 차례 밀사가 다녀간 끝에 크루시오는 다시 원정에 나서기로 했다. 왕위 계승 초반 안팎의 도전을 이겨낼 만큼 자신이 없었고 마지막이라는 단서를 다하드가 수용했기 때문이다. 대신 다하드는 후대에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발렌시아의 성은 봐야 하지 않겠냐며 대규모 원정을 제안했다. 원정대가 꾸려지는 데만 2년이 소요되었다.
검은사막에 이르기까지는 도몬가트조차 눈을 감고도 갈만한 익숙한 길이다. 뒤에 처져서 여행처럼 다녀오면 될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있을까? 원정 초반부터 일기 시작한 바람이 메디아에 이르자,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모래 소용돌이로 변했다. 사막은 아직 멀다. 연합은 낯선 성벽 아래 병영을 꾸리고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서야 메디아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누군가 붉은 깃발을 보았다고 외쳤다. 붉은 깃발은 발렌시아 진영이 섰음을 말하고 연합이 검은사막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종군하던 엘리언 사제들이 모두 하늘을 향해 기도를 시작했다. 그사이, 오랜 적과의 일전을 위한 막사와 진영이 바람을 무릅쓰고 꾸려졌다. 그러나 얼마 안가 낮이 밤처럼 어두워졌고, 폭풍우가 몰아쳤다. 모래 구덩이에서 크루시오가 눈을 떴을 때쯤 다하드는 없었다. 붉은 깃발이 바로 옆에 나뒹구는 것을 보아 발렌시아의 피해는 더 컸을 것이다.
원정?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다시 검은 구름이 사방에 깔렸다. 귀환 길은 험했다.계속된 모래 폭풍과 지반 침하가 살아남은 원정대를 괴롭혔고, 데미강 하류에 이르러서는 바다처럼 넓어진 강물이 길을 막았다. 한 달을 꼬박 기다리고 난 뒤 데미강 하류에 생겨난 거대한 삼각주를 건너면서야 크루시오는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원정을 후회했다. 마지막 원정은 그렇게 끝났다. 칼페온의 교단은 병사들을 크게 포상했다. 그리고 발렌시아가 못 일어설 만큼 큰 승전을 거뒀다고 떠들어 댔다. 이유야 어떻든 재해로 시름이 컸던 상황에서 필요한 위안이기도 했다. 하이델 성까지 이르는 세렌디아 평원은 다행히 재해의 영향이 크지 않은 듯 했다. 다만 남쪽 지반이 꺼지며 습지가 늘었다.
사람이 끝내지 못한 전쟁을 자연이 끝냈고, 치유의 시간 동안 평화가 찾았다. 왕을 잃은 칼페온에서는 갓 스물을 넘긴 가이 세릭이 왕위를 이었다.
어린 나가들 손에 들린 돌조각이 흑결정이라는 조사관의 보고를 접한 도몬가트는 즉시 습지로 달려갔다. 칼페온의 힘에 밀려 불행한 원정에 나섰던 것을 갚아줄 확실한 열쇠를 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몬가트의 불행은 시작도 안 했다.
그 즈음 백방으로 흑결정을 찾아 나선 것은 칼페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칼페온 땅에 흑결정은 없었다. 케플란의 채석장에 이어 세렌디아에서 흑결정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젊은 왕 가이 세릭은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가이 세릭이 생각을 바꿨다. 필요한 것은 흑결정이었기에 항복 문서 대신 조약서를 내밀었다. 예고된 엄청난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상황에 도몬가트가 망설였다. 항복이 아니라면 언제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칼페온 파견관들은 조약이 이행되는 상황을 1년 넘게 확인했고 그 후 도몬가트가 하이델에 돌아왔다. 하이델 사람들은 도몬가트를 이해했다. 감시탑 부근 평원을 중립지로 하고 캠프를 서부로 옮겨야 했던 클리프와 암스트롱도 왕의 결정을 존중했다. 비겁자라 수근 댄 이들도 많았지만, 도몬가트는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 칼페온의 추출장이 세렌디아의 습지에 들어서는 것을 보는 것이 마음을 더 불편하게 했다. 크루시오가 병을 앓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고대인들이 의지의 탑을 쌓은 직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메디아의 역사
그렇게 메디아 외곽에서 행해지던 은밀한 움직임이... 다시금 메디아를 이전의 무법지대로 되돌려 놓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카르티안 서를 습득한 자들은 결국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육체적 또는 정신적 손상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따라서 카르티안 서는 새로이 작성되었고, 진짜는 봉인되었다. 그리고 가장 강한 다음 지도자에 의해 결계가 하나씩 더해져 갔다. 파기되지도, 불타지도 않는 카르티안 서에 담긴 소서러의 파멸을 꺼내 볼 수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발렌시아의 역사
깨어있는 자가 나타나 한 청년을 고대 석실로 이끌어, 닫혀있던 문이 열리자 모두가 무릎 꿇고 석실로 향하는 계단을 놓아, 금은보화가 가득한 그 방에 다다랐을 때, 청년은 가장 먼저 금빛의 왕관을 집어 드니, 발렌시아의 첫 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재앙을 몰고 온 발렌시아의 4대 국왕, 이무르 네세르의 통치가 끝난 지 50년. 발렌시아 사람들은 당시 모든 기억을 잊고 살고 있다. 대사막을 덮친 검은 죽음도, 발렌시아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사건으로 남은 아크만 대학살도… #1 엘리언력 233년 아크만 부족과 네세르 왕족 간의 갈등은 예견된 일 중 하나였다. 발렌시아 건국 이전부터 존재해 온 아크만 부족은 스스로를 <고대 문명의 수호자>라 칭하며 그 어디에도 소속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발렌시아 사막에 놓인 석실, 고대 유물 등을 놓고 왕족과 마찰을 일으켜왔고, 4대 국왕 이무르 네세르는 아크만 부족을 규합하는 것이 유일한 과제라 여겼다.
그렇게 아크만이 모습을 감추자 곧 참담한 재앙이 서대륙을 뒤덮기 시작했다. 발렌시아 상단으로부터 시작된 검은 죽음, 살덩이가 검게 썩어들어가는 참혹한 광경 앞에 이무르 왕도 사랑하는 왕비를 잃어야 했다. 사람들은 아크만 종족을 학살한 이무르 왕이 신의 분노를 산 것이라 수군거렸다. 이국에서는 그를 악마로 지목했다. 발렌시아가 검은 돌을 이용해 재앙을 초래한 것이라 몰아세운 것이다. 칼페온의 엘리언교 사제들은 재앙을 막기 위해 검은 돌이 묻힌 사막을 차지해야 한다고 선동했다.
카마실비아의 역사
게다가 미래를 보는 숲의 툴리아로부터 머지않아 수도가 잿더미에 잠식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을 때, 베디르는 결단했다. 베디르는 줄곧 어둠의 정령을 넘어설 힘을 찾아왔다. 수많은 시도를 해왔지만, 역시 카마실브의 기운을 넘어서는 힘은 카마실비아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베디르의 생각이 도달한 지점은 카마실브를 태워 발현되는 힘을 기대하는 것이었다. 기대는 곧 현실이 되었다. 카마실브의 기운이 타들어 가며 나타난 생명의 힘은 실로 파괴적이며 대단했다. 그러나 카마실브는 온전하지 못했다. 모든 숲을 이룬 양분이자 생명을 만든 대자연의 어머니인 카마실브가 소멸했을 때, 자손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슬픈 정적을 깬 것은숲의 노래였다. 카마실브가 다시 깨어나리라는 위로가 담긴 이 노래는 아주 오랫동안이나 모든 숲에 울려 퍼졌다.
흉포하고도 말이 통하지 않는 살룬곰이다. 위협적인 거대한 그림자,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짙푸른 눈동자, 아히브가 살룬곰을 끌어들인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날카로운 가시 넝쿨이 솟아난 메마른 땅의 경계에서 아케르는 돌아서야 했다. 카마실비아의 숲으로 돌아온 아케르는 그간의 다툼으로 일그러진 대자연에 집중했다. 카마실브의 생명을 깨울 방법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카마실비아에 남은 베디르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가넬의 기운이 섞여 있거나 스스로 베디르임을 부정해 힘을 봉인한 자들이었다. 아케르도 그런 자들까지 내치진 않았다.
드리간의 역사
용을 죽인 저주는‘셰레칸’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용의 목을 적시기 위해 평생 떠돌 것이다. #1 엘리언력 185년
셰레칸의 전사들이 차례대로 죽음을 맞이해갈 때, 한 기록자는 재앙에 대해 용의 피를 뒤집어쓴 대가라며, 셰레칸의 역사는 고작 한 구절에서 마칠 것으로 예상했다. 용을 직접 죽인 셰레칸 최후의 생존자, 아쿰은 숨을 거두기 직전, 후대에 용의 이빨을 건네며 ‘이것을 땅에 묻어 축복의 비가 내리는 곳에 정착하라’ 일렀다. 용의 저주에 의해 죽어간 선조의 뜻에 따라 후대는 긴 방랑 생활을 시작했다.
끝없는 겨울의 산의 역사
하지만 영원할 수 없었던 그녀들은 사라지기 전에, 자신들을 대신할 겨울의 용사를 찾고 있었으니, 여섯 마녀의 시련을 이겨내고 얼음 봉우리에 홀로 설 용사여, 위대한 라브레스카 님의 보물, 신도 태워죽이는 심연의 불꽃, 이닉스를 품고 어둠에 대적할지니, 끝없는 겨울의 산, 태고가 잠든 안식처로 오라… #1 기원전 4000년